"생리휴가 쓰려면 생리대 보여줘"…빼앗긴 기본권 '휴가'

공공기관 A사에 다니는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2년여간 부서장 등에게 폭언과 갑질에도 침묵이 유일한 대응책이었다. 단순 고객상담 및 응대가 근무계약상 업무 임에도 기관에서는 정규직 명의로 계약된 콜센터 업무를 시킨 뒤다.

부서장 등은 생리나 임신 등에 막말을 쏟아내는 게 일상이었다. 부서장 등은 임신한 한 직원이 갑작스러운 하혈로 출근을 하지 못하고 산부인과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타 직원을 시켜서 출근을 지시하기도 했다.


생리휴가를 내는 직원들이 있으면 생리대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또 ‘누구는 멍청해 피임을 못해서 임신한다’는 식의 반복되는 폭언을 견디지 못한 한 직원이 퇴사를 결심했는데 퇴사하는 그날까지 폭언은 끝없이 이어졌다.

일하는 사람의 당연한 권리인 휴가를, 그것도 건강상의 이유임에도 쓰지 못하는 직장의 풍경이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직장갑질 119’의 문을 두드린 이 제보자처럼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휴가는 ‘빛 좋은 개살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올해 1월20일까지 약 100일간 오픈카톡과 이메일, 페이스북으로 들어온 갑질제보 5478건 중 연차휴가·출산휴가·육아휴직 등을 제대로 쓰지 못한 사례가 428건(전체 7.8%)에 달했다.

‘가족 같은 분위기’ 탓에 눈치보며 연차휴가를 써야하거나, 출산휴가 신청에 퇴사를 종용하기도 하고, 직종 특성 상 법정휴가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등 10일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눈물 나는 휴가 하소연에 귀를 기울여본다.

◆인력 부족·분위기 탓 휴가 못가...“휴가 가려면 퇴사하라” 압박도

‘직장갑질119’과 고용노동부, 환경노동연구원 등에 따르면 수도권의 시내버스회사 B사에 종사하는 근로자 3명은 몇해 전 연차휴가를 썼다가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신청한 일자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는데 인력 부족으로 해당 노선에 결행이 발생했다는 게 이유였다. 준공영제로 운영되던 B사는 자치단체로부터 100만원의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은 것을 근로자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다툼은 법정까지 넘어갔고 법은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2016년 연차휴가 사용으로 인한 사업운영의 지장은 사용자가 인원대체 방법을 제대로 강구하지 않은 잘못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최근엔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의 한국 지사의 휴가 갑질이 화제가 됐다. 즉 이 회사에서 16년차 근무해온 김모씨는 올해 장기근속 휴가를 다녀온 뒤 직속 상사로부터 “휴가를 사용할 거면 갈거면 차라리 3개월치 급여를 줄테니 퇴사하라”는 폭언을 들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충북 음성노동인권센터와 음성군 체육회 소속 생활체육 지도자들도 지난해 10월 “군 체육회 간부가 지도자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고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갑질을 했다”고 주장, 논란이 일기도 했다. 즉 음성군 체육회가 특별한 사유 없이 결재를 거부하거나 휴가를 2∼3일씩 나눠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직장인 연차휴가 사용률 52.3% 그쳐

직장인들은 연차휴가의 사용에 제약이 많다. 대체인력을 구하는 것이 사용자의 의무임에도 여전히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연차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 ‘국내관광 활성화를 위한 휴가확산의 기대효과 분석 및 휴가사용 촉진방안’에 의하면 임금근로자의 평균 연차휴가 부여일수는 평균 15.1일로 조사됐다. 이중 사용일수는 평균 7.9일로 사용률은 52.3%에 그쳤다.



연령·자녀수·근속년수가 높아질수록 휴가사용률이 감소했고 서비스 및 판매직, 공공기관(기업),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의 사용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연차휴가를 쓰지 못하는 장애요인으로 44.8%(1·2·3순위 복수 응답)가 ‘직장내 분위기’를 꼽았다. 이는 20대·민간기업·10일 미만 일수록 ‘직장내 분위기’ 때문에 연차휴가를 쓰지 못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어 ‘업무 과다 및 대체인력 부족’이 43.1%, ‘연차휴가 보상금 획득’이 28.7% 순으로 조사됐다.

연차휴가에 대한 지원금을 받은 비율은 17.1%에 불과했다. 미사용 연차에 대한 보상제를 실시하는 기업은 49%에 그쳤고 보상금액은 일평균 8.7만원이었다. 영업직·고연차 관리자·중고생 이상 자녀를 둔 근로자일 경우 휴가보다 연차수당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출산휴가 쓴다 말했더니 “나가라”…퇴사처리 공고까지 내

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은 임신·육아 시기의 직장인들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일·가정 양립이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다.



실제 서울시와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가 낸 2016년 12월에 발간한 보고서 ‘서울시 직장맘 종합상담 사례집’에는 출산휴가과 육아휴직 사용에 제약을 받은 직장맘들의 애타는 호소가 가득했다.

직장맘 C씨는 회사가 출산휴가를 안 준다고 했다가 뒤늦게 사용하라고 허용했는데 사용 후 퇴사를 종용한 일로 센터에 상담을 요청했다. 해당 회사는 심지어 퇴사처리 공고까지 일방적으로 내기도 했다. 해당 상담은 근로감독관과 상근노무사의 밀착 지원으로 큰 문제 없이 해결됐다.

사내 커플로 2개월 후 출산을 앞뒀던 다른 직장맘 D씨는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가 부적합한 사람이라며 인사평가에서 최저점을 주고 상여금도 50% 삭감하는 등 불이익을 준 후 권고사직까지 요구받기도 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던 한 직장맘은 연장을 요청하자 회사에서 복직서와 사직서를 보내왔다. 이를 거부하자 결국 권고사직서 자필 서명까지 요구했다.

‘난임갑질’도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E씨는 1년 넘는 난임휴직을 거쳐 어렵게 임신에 성공한 뒤 최근 복직 신청을 했다. 하지만 기관본부의 운영지원부장은 난임휴직을 의심하면서 복직 등을 거부하고 오히려 징계를 예고했다. 산부인과 기록까지 제출했다는 E씨는 “난임치료를 증빙해야 할 법적, 내규 근거도 전무한데 개인적 판단으로 임신 중인 현재까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연차휴가사용촉진제 등 악용 많아… 불합리한 제도 폐지를”

전문가들은 연차휴가사용촉진제 등 각종 제도들이 실제 현장에서 직장인들의 ‘휴식권’을 가로막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직장갑질119에서 활동 중인 박성우 노무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당사자에게 시기지정권이 있어 본인이 청구하는 날에 줘야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제도 자체가 적용이 안 되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연차유급휴가를) 전면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근로자 대표와 합의를 하면 특정근로일에 일방적으로 연차휴가를 쓰게 하는 제도가 있는데 사실을 굉장히 악용되고 있다”며 “(회사에서 특정일을 지정해 휴가사용을 권장하는 경우 미사용 휴가일수에 대한 금전보상의 의무를 면제해주는) 연차휴가사용촉진제 역시 실제로는 쓸 수가 없는 환경에서 형식적으로 강요하고 수당지급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어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박 노무사는 연차휴가 수당을 못 받는 경우에 대해서는 “이 경우 회사 측에서 휴가를 쓴 사실을 반증해야 하는 케이스”라며 “거기에 대한 반박이 필요한데 휴가를 못 썼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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